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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김동녕 / 한세실업 사장·예스24 회장
[사람들] 김동녕 / 한세실업 사장·예스24 회장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4.0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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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사 노하우, e서점서도 통해요

20년 넘게 의류업체에 매달려 온 경영자니 당연히 ‘사장님’ 냄새가 물씬 풍기리라 예상했다.
더구나 사이판, 니카라과, 베트남 등에 일찌감치 공장을 세워 미국 시장 진입에 성공한 전형적인 수출기업이라지 않은가. 도대체 그런 기업을 하던 사람이 무슨 마음으로 국내 최고 인터넷 서점을 인수하게 된 것일까.

하지만 김동녕(58) 한세실업 사장과 첫인사를 나누는 순간, 모든 궁금증은 풀리기 시작했다.
질문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 느릿느릿 꼼꼼하게 답하는 김동녕 사장의 모습은 오히려 학자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예스24를 인수했냐는 도발적인 질문에 김동녕 사장은 “집안 전체가 워낙 책을 좋아하고 많이 보는 분위기라 서점이 어색하지 않다”며 웃는다.
부친을 비롯해 부인, 동생들이 모두 교수인 학자 가족이라 책과 늘 가까왔다는 게 김 사장의 수줍은 ‘변명’이다.


지난해 5월, 의류 수출기업으로 알려진 한세실업이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인 예스24 www.yes24.com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니트를 주로 제작해 미국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생산) 수출을 하는 기업과 인터넷 서점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오프라인기업이 전혀 생소한 온라인기업을 과연 잘 경영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검토해 온 일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한세실업이 수출 위주로 커 오다 보니 현금을 많이 확보하게 됐어요. IMF 때 현금이 있는 기업들은 주로 부동산에 투자를 했지만 전 개인적으로 부동산엔 별 관심이 없어서 현금을 그대로 쥐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한번 기회가 온 적이 있었다.
IMF 이후 좋은 기업들이 매물로 오르면서 M&A열풍이 인 것이다.
김 사장은 이때 쌍방울이나 세계물산 등과 같은 의류업체를 인수해 패션쪽으로 더 진출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인수가 좌절되면서, 그럴 바엔 아예 좀 더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자연스레 인터넷기업들에 대한 리뷰에 들어갔고, 포털, 쇼핑몰 등 각종 사이트들을 검토하다 예스24를 알게 됐다.


하지만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임에도 불구하고 예스24의 성적은 너무 초라했다.
2002년까지 한해 매출은 1천억원을 넘겼지만 누적적자가 200억원이나 됐다.
성장성이 중요한 산업이지만, 선뜻 택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처조카인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이었다.
예스24에 이어 인터넷 서점 업계 2위인 알라딘의 조 사장은 “어려움이 많은 분야지만 고모부가 운영하시면 반드시 짧은 시간 안에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 이 한마디로 김 사장의 마음을 흔들었다.
조 사장에게 예스24는 가장 큰 경쟁자였지만, 인터넷 서점의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7월, 김 사장은 예스24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시작했다.
일단 본격적으로 현황 파악에 들어가 보니 인터넷 서점의 고전적인 문제가 많이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과당경쟁 속에서 매출 위주로 성장을 해 온 탓에 수익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졌다.
“저도 79년에 운영하던 기업에서 실패하고 81년에 다시 한세실업을 일으켰는데, 79년까지 저도 그랬어요. 5년 동안 적자를 보더라도 사업을 계속하겠다고요. 하지만 일단 그런 형태로 사업이 굳어져 버리면 영원히 수익을 낼 수 없는 기업이 됩니다.


자신의 실패 속에서, 처음부터 수익을 내는 기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김 사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우선 100억원 유상 증자를 통해 기존의 빚을 떨어 내는 것으로 출발선을 다시 그었다.
그런 뒤 4곳으로 흩어져 있는 사무실을 한 건물로 합치고, 500여명이나 되는 직원을 300여명으로 줄였다.
회장실도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 안에 칸막이를 세운 간이공간으로 겨우 자리를 마련했다.
구석구석 남아 있는 군살을 뺀 결과 인건비와 부대비용을 약 15억원이나 줄였다.
또 차입금과 전환사채를 상환해 이자비용도 10억원이나 줄였다.
반년 동안 모두 25억원이라는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본 것이다.
쓰던 비용을 줄이니 손익분기점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마침내 11월, 인터넷 서점 업계에선 첫 번째로 월 흑자를 내면서 김 사장의 구조조정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뜻하지 않던 또 하나의 변수가 던져졌다.
인터넷 서점 업계에 불고 있는 무료 배송 바람이다.
인터파크가 처음 도서 무료 배송을 선언하며 시장에 파란을 일으킬 때만 해도 업계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업계 2위인 알라딘까지 이 대열에 오르자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김 사장은 그런 식의 과당경쟁에는 더 이상 응대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고수한다.
“지금처럼 4만원 이상 구매해야 무료배송이라는 시스템을 고객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걸 지금에 와서 되돌리는 건 회사의 비용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전체를 올리는 겁니다.
” 현재 예스24의 1회당 평균 구입 도서수는 7권, 무료배송을 하는 인터파크의 1회당 평균 구입 도서수는 2.5권이다.
김 사장은 객단가를 높이는 게 쇼핑몰의 과제인데, 무료배송을 하게 되면 고객들을 꾸준히 훈련시켜 낮춰 놓은 원가절감부분을 다시 높이는 셈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한 기업의 원가상승은 산업 전체의 원가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사장의 주장이다.
결국 무료배송은 책값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고객이 그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 김 사장이 구상하고 있는 예스24의 사업계획은 다양하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현재 판매하고 있는 도서와 CD, DVD 외에 책과 관련된 다른 상품들을 쇼핑몰에 덧붙이는 것을 많이 고민하고 있다.
특히 책을 읽는 사람들과 타깃이 일치하는 공연 예매부분을 사이트에 올리는 것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다.
좋은 사이트가 있으면 인수를 해서 시너지를 내고 싶다는 속내도 슬쩍 엿보인다.
이 밖에 현재 250개의 LG25편의점에 도서를 공급하고 있는데, 더 많은 점포로 공급을 확장하는 것도 진행하고 있다.
아마존과 같은 세계적인 사이트와 비교할 때 고객 개개인의 취향에 맞춰 책을 권하는 ‘추천 기능’이 많이 약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어, IT투자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그런 계획들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올해 흑자 전환도 가능하고, 2005년 코스닥 등록도 무난하다는 것이 김 사장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업계에 꾸준히 돌고 있는 알라딘과의 합병에 대해 물었다.
업계 1위와 2위 기업의 대표가 친인척 관계라는 점 때문에 업계에선 그 가능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우리는 경쟁자라기보다는 동업자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그 점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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