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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계 경제에 보내는 경고음 - '디플레이션 속으로'
[서평] 세계 경제에 보내는 경고음 - '디플레이션 속으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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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국지음
이콘펴냄
1만2천원

저자의주장은자못비관적이다.
한국경제의봄날은갔고,잔치는끝났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저투자,만성적인실업이지배하는디플레이션의시대가도래한것이다.
이를피할수있는방법은,안타깝지만없다.
적응이문제일뿐이다.
한국경제가구조적인덫에걸려들었다는최근의경제위기론조차저자의시각에서보면대단히낙관적이다.


경제학에서‘디플레이션’은1929년대공황이후지금까지잊어온단어였다.
지난70년동안한국경제를포함한세계경제를지배해온화두는단연기술진보와성장이다.
금융,통화정책을책임진각국중앙은행도인플레이션(지속적인물가상승)억제에골몰해왔을뿐,디플레이션(지속적인물가하락)은논외로취급했다.
90년대초일본경제가장기불황에빠져들면서디플레이션의가능성이다시주목받기는했지만,일본의경우는어디까지나남의나라의‘불행’정도로만비쳐졌다.


그러나세계제2의경제대국일본이디플레이션을겪고있다면,미국이나유럽,한국이그렇게되지말라는법은없다.
29년의대공황역시아무런예고도없이어느날갑자기찾아왔다는사실을기억해야한다.
저자는우리현실의곳곳에서디플레이션의징후를찾아낸다.


몇년전부터한국은투기공화국으로변했다.
수십만명이경마,경륜,경정에엄청난돈을건다.
주식시장에서장기투자는찾아볼수없고,투기성이높은선물과옵션이인기다.
우리나라선물시장은세계2위,옵션시장은세계1위다.
대박심리에휩싸인수많은사람들은로또복권에열광한다.
로또복권추첨시간에는거리가썰렁할정도다.
왜그토록많은사람이대박을좇아무모한선택에나서는것일까.그배후에는디플레이션이라는현실이놓여있다.
90년대중반까지는누구나열심히일하면돈을벌수있었다.


어떤자산이든지물가상승과고금리로인해갖고만있으면가격이올랐다.
IMF이후이런상황은완전히바뀌었다.
수도권과일부지역을제외한부동산가격은하락했고,실업률은치솟았다.
그러나사람들은인플레이션시대의낡은사고방식에서벗어나지못하고있다.
디플레이션의현실과인플레이션적사고의괴리가대박심리에불을댕긴것이다.


디플레이션이발생하는5가지원인

디플레이션이발생하는원인은여러가지로,저자가꼽는것은5가지다.
과학기술의발달,이데올로기시대의마감,세계화,자원고갈과환경문제,인구감소와고령화.이가운데가장핵심적인것은과학기술의발달이다.
과학기술의발달이디플레이션으로이어지는구조는비교적단순하다.
기술의발달은생산성증대를가져온다.
생산성이증대되면가격은하락한다.
더좋은물건을더값싸게제조하는게가능해지기때문이다.
또한생산성증대는공급과잉을초래한다.
공급과잉이되면기업은투자를줄이게되고,따라서일자리도줄어든다.


실업은‘현대의흑사병’이다.
디플레이션이치유되지않는한실업문제는풀리지않는다.
나머지4가지원인도,그것들이각각생산성증대와공급과잉을가져온다는측면에서생각하면쉽게납득할수있다.
냉전종식과사회주의의몰락은그동안정치적인이유로제약받았던효율성이극대화할수있는공간을열어준다.
냉전시대에는중앙아시아의자원개발이불가능했고,상대진영을피해먼거리로물류가이루어졌으며,원자재와부품조달도블록내에서만이루어졌다.


또한중국과동유럽의경제개발과생산력증대는세계적인차원에서디플레이션시대를촉진하는역할을했다.
세계화역시경쟁의범위를전세계로확대함으로써가격인하를부채질한다.


그러나기술발달과생산성향상이항상디플레이션을가져오는것은아니다.
수요의증가가생산성증가를앞지를경우에는아무런문제도발생하지않는다.
그동안지속적인기술발달에도불구하고디플레이션이발생하지않은것도이때문이다.
그러나이제는생산성이수요증가를훨씬앞질러공급과잉이빚어지고있다.
파국이닥친것이다.
고령화와인구감소는바로이부분에서등장한다.
흔히생각하듯이고령화로인한경제활동인구의감소는큰문제가되지않는다.
1인당생산성이함께증가하기때문이다.


이를테면더적은노동력으로더많은양의생산을할수있다.
고령화는소비의위축을가져온다.
일반적으로노년층은소비를극단적으로줄이고,안전한자산에만투자하는보수적인성향을보인다.
이는경제활력의전반적인저하를가져온다.


‘부채디플레이션’가능성에주목

물론저자의주장은상당부분‘예언적’이다.
구체적인현실분석이나엄밀한논리전개를건너뛴다.
경제현상을지나치게단순화하거나연관성이부족한내용들을무리하게끼워넣은경우도적지않다.
일반적으로경제학자들은디플레이션의원인으로자산가격거품의붕괴,과도한통화긴축,과잉설비및과잉공급,생산성향상,디플레이션의국제파급등을꼽는다.
이가운데최근국제사회에서주목받는것은오히려자산가격거품의붕괴로발생하는디플레이션,소위‘부채디플레이션’(debtdeflation)의가능성이다.


자산가격급락은담보가치의하락을가져와가계와기업의대차대조표를악화시키고,소비와투자의위축,금융기관의부실채권증가를가져온다.
일본이이경우에해당한다.
미국이나유럽국가들의민간부채수준이전반적으로높다는점에서,부채디플레이션은엄청난혼란을몰고올수있다.


또한디플레이션의시대가정말도래했느냐도논란의여지가많다.
디플레이션의가능성을경고하는목소리는많지만,아직까지는세계경제혹은,미국이나유럽,한국이디플레이션에빠졌다는증거는어디에도없다.
물론디플레이션의가능성이비교적적다고는해도그것이현실화됐을경우마땅한치유방안이없는만큼,충분히주의를기울여야하는것은분명하다.
일반적인경기침제의경우이자율인하로대응할수있다.
이자율이낮아지면통화공급이확대돼투자와소비가촉진된다.


디플레이션상황에서는이러한전통적인통화정책수단이무력화된다.
이자율을제로로낮추어도경기가살아나지않는유동성함정에빠지는것이다.
그러나몇몇학자들은디플레이션을경제발전과정에서과잉요소를해소하는‘필요악’으로보기도한다.
하이에크와슘페터는디플레이션이주기적으로나타나면비효율적인기업이도태되고생산요소가보다효율적인부문으로재배치되는긍정적효과가있다고주장했다.


이런점에서본다면저자는‘디플레이션’을전통적인경제학적의미보다는좀더포괄적인맥락에서쓰고있다고할수있다.
그러나그것이구체적으로무엇을의미하는지는다소모호하다.
새시대새로운패러다임을외치던저자의목소리는책중반을넘어서면서방향을잃고진부해지는느낌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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