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국내 총생산(GDP)에 포함시킨다면, 어느 정도나 될까. 문숙재(이화여대 소비자· 인간발달학과)·윤소영(송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팀은 지난 2001년 ‘무보수 가사노동 위성계정 개발을 위한 연구’에서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최저 124조원에서 최고 150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99년 국내 GDP의 약 25~32%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수치가 각 나라별로 GDP에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선진국처럼 이미 집 바깥에서 가사노동을 많이 덜어간 나라라면 GDP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처럼 산업화의 속도가 더뎌 대부분의 가사노동이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잘사는 나라의 서열에도 변화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일반적으로 GDP나 GNP 등을 포함하는 @@@국민계정체계(SNA)@@@는 판매를 목적으로 시장에 내놓은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이런 국민계정체계하에서 가사일을 전담하는 주체는 소비자에 머무를 뿐이다.
가사노동의 생산적인 측면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도 분명히 ‘노동’은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른 생산물도 나온다.
이처럼 기존 계정체계에 집어넣기는 힘든 산업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위성계정’(Satellite Account)이다.
UN은 지난 1953년에 국민계정체계를 발의한 이후, 2차례의 개정작업을 거치면서 ‘환경, 보건, 교육, 관광’ 등의 분야에 위성계정의 도입을 권장했다.
이 개념이 특히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분야는 환경분야다.
국내순생산(NDP)에 자연자산의 훼손이나 오염분을 화폐로 환산, 차감해서 ‘환경요인조정 국내순생산’을 산출하는 식이다.
가사노동을 국민계정체계에 포함시켜 측정하려는 시도는 UN이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한 197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멕시코시티회의에서 무보수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연구의 필요성이 역설됐고, 그 이후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5년 인간개발보고서’에서 여성노동의 가치평가와 관련한 정책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이어 97년 한국에서 열린 워크숍에선 무보수 노동의 양적 계량화를 위한 ‘생활시간조사’가 논의되면서 좀 더 구체화됐다.
지난 9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활시간 조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생활시간 조사는 가사노동의 위성계정화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소다.
당시 통계청에서 생활시간 조사를 담당했던 손애리 사무관은 “가사노동 시간의 측정을 위해 행동분류 세분화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말한다.
가사노동에 투입된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 계량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생활시간 통계와 함께 필요한 것이 임금 수준에 대한 통계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가사노동의 위성계정은 투입된 시간에 해당 임금 수준을 곱하고, 이 값을 가사노동이 이루어지는 전 세대로 환산한 값이 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가계 내 무보수 가사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아가면 ‘무보수 가사노동 위성계정’(SAUHL)을 산출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가계 내 자본 소비를 부가가치를 갖는 생산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윤소영 송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부가 냉장고를 구입한 것도 단순한 소비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설비투자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계 생산에 기여하는 내구재의 가치는 기존 국민계정체계에서 가계 내구재와 준내구재의 감가상각액을 통해 추정한다.
즉 감가상각된 만큼 가계생산에 기여했다는 의미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된 가계생산의 총 부가가치는 143조원에서 169조원으로, 99년을 기준으로 할 때 국내 GDP 대비 약 30~35.4%에 이른다.
용어설명 국민총생산(GNP)이나 국내총생산(GDP) 등의 지수들이 갖고 있는 단점을 보완해 한 국가의 종합적 경제 수준을 파악하는, 보다 일관성 있고 통합된 통계 시스템이다. 기본 골격은 크게 국민소득통계, 산업연관표, 자금순환표, 국제수지표와 국민대차대조표의 5대 국민경제통계로 구성돼 있다. 1953년 UN에 의해 처음 발표된 SNA는 68년과 93년 2번의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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