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을 접할 때마다 그 사건과 인터넷을 연결시켜보곤 한다.
현대그룹 정주영 일가의 계열사 해체 소식을 듣고도 그런 생각을 했다.
2~3년 전만 해도 재벌이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한국에서, 그것도 재벌 가운데 왕재벌이 자신을 내던지겠다고 공표하다니. 머릿속에 흐릿한 흔적으로 남은 현대그룹을 정보통신 발전사에 빗대 연결하고 짜깁기하다가, 급기야 한 세대 전에 사용했던 공룡 같은 컴퓨터에 기억이 멈췄다.
“맞아! 그랬었지.” 마치 대단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옛날 생각이 났다.
60년대 말의 대형 컴퓨터! 당시 컴퓨터는 집채만한 몸집에 전기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대식가였고, 그 몸집에서 발산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무지하게 크고 요란한 공기조절장치가 하루종일 윙윙거렸다.
하지만 그런 컴퓨터도 요즘 정보기술이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큰 장점을 지녔으니, 그게 바로 ‘보안’이다.
당시 컴퓨터의 폐쇄성은 보안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개방성과 정보공유로 대변되는 인터넷 사회 그런데 그뒤 18개월마다 프로세서 성능은 두배씩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이 정보기술산업을 지배하면서 거대한 몸집은 한없이 작아졌다.
한손에 잡힐 만한 크기에도 천문학적 정보처리능력과 저장능력을 키웠다.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 예전의 컴퓨터가 폐쇄성과 정보 독점을 상징했다면, 인텔리전트 PC 중심의 분산 컴퓨팅 기술과 인터넷의 보급은 개방성과 정보공유로 대변된다.
한국식 기업 운영의 세계적 브랜드가 돼버린 ‘재벌’(jaebul)이 지금은 화석처럼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대형 컴퓨터 같다는 생각이 다다른 지점이 여기다.
폐쇄성은 보안성이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개방성은 보안의 허점에 바로 노출된다.
그런데도 수많은 기업과 개인은 자신의 폐쇄된 네트워크와 PC를 인터넷에 연결해 개방화를 서두르고 촉진한다.
더큰 경쟁력을 겨냥해 ‘인터넷 현상’을 스스로 체득하고 적극 껴안으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거대한 패러다임이 돼버렸다.
이제 문제는 보안이다.
아쉽게도 보안의식은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속도를 좇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보안 침해의 유형은 실로 다양하고 사례를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약간의 여유, 그리고 보안을 염두에 두고 인터넷을 탐험해보라. 거기에서 벌어지는 보안 침해사례를 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도 하나의 침해사례를 발견했다.
황당했다.
좋게 말해 안철수연구소의 패러디 사이트? 검색엔진을 통해 찾은 V3+ 백신 정보제공 사이트는 우리를 사칭한 사이트였다.
서툰 외양으로 보아 운영자는 분명 철없는 어느 청소년일 게다.
이곳으로 접속한 사용자 가운데엔 바이러스신고센터로 잘못 알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샘플 파일을 이곳 운영자에게 보내줄지도 모른다.
신용사회를 해치는 일종의 불법사칭 행위인 셈이다.
인터넷에선 네트워크와 웹의 불법침입, ID 사칭과 절취, 도용 등 행위가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구촌 전체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브버그’이다.
ICSA 보고에 따르면, 과거 예루살렘 바이러스가 지구촌에 유포되기까지 3년이 걸린 반면에 러브버그는 불과 5시간 만에 전세계에 퍼졌다.
보안 침해의 상당수는 대부분 10~20대 초반의 청소년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으며, 이는 도덕적 가책없이 상습적으로 다반사로 발생한다.
어릴 때부터 도덕교육에 신경을 쓰고, 보안침해방지법을 강화해 범죄자를 나무라고 단죄하는 강도를 높이면 그 폐해가 줄어들까? 글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청소년은 스스로를 제어하기 힘들다.
위험한 해킹과 인터넷 사회에서 일탈을 시도하는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뭔가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어보고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한다.
해킹범죄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교화나 단죄로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력한 일이다.
그들 앞에 펼쳐진 PC와 인터넷은,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니라 단지 정복하기 위한 대상일 뿐이다.
철저한 독과점은 과거로 가는 길 보안 침해와 같은 온갖 종류의 사회악이 판치는 사회라고 해서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정말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 해보았다.
인터넷이 아닌 현실사회에서 온갖 종류의 범죄가 존재하고, 이를 방지하는 장치와 제도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현재진행형이지 마침표가 아닌 것처럼, 인터넷과 보안 침해 현상도 그렇게 해석돼야 할 것 같다.
다시 글 앞머리로 돌아가서, 순수한(?) 해킹조차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독과점으로는 과거의 공룡 컴퓨터처럼 퇴화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보안이란 것은 사실 스스로를 부정할 수 없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한 덩어리라는 데 생각이 이른다.
내일은 또 어떤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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