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원만 넉넉해지면 곧 윤리적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직원들을 거리로 내보내 휴지를 줍거나 헌혈하게 하면 된다.
” “기업 이익과 윤리경영은 서로 대립되는 가치다.
” 이런 생각에 100% 동의한다면 <전략적 윤리경영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필자인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생존을 위한 이익과 선행을 위한 사회환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요는 중세적 흑백논리”라고 말한다.
“이런 중세적 흑백논리는 기업이 세상을 이끌고 있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이념이 될 수 없다.
‘사악한 이익’과 ‘사악하지 않은 다른 가치들’ 사이의 대립은 이제 낡은 모형이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이윤 창출 행위가 갖고 있는 순기능은 이미 상식이 됐다.
마찬가지로 윤리경영 행위가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증거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등 우리가 아는 다국적 기업부터 인도의 애러빈드안과 브라질의 매거진루이자 등 흔히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기업까지 그는 세계 곳곳의 ‘증거들’을 들이댄다.
업종도 청소용역업체 ‘서비스마스터’, 법률회사 ‘SWM', GM과 도요타가 함께 세운 ‘뉴미’ 자동차공장 등 다양하다.
‘기업책임부’ 신설해 위기 돌파한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는 ‘투명한 회계’ 자체가 주가 관리 전략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적에 관한 한 보수적이기로 유명하다.
남들은 모두 자산으로 넣는 연구개발비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용으로 바로 처리해버린다.
일부 소프트웨어를 팔아 얻은 수입은 매출로 기록하지도 않는다.
사후관리 비용이 그만큼 들어간다는 이유다.
심지어 이 회사의 기업설명회(IR)는 ‘우울한 설명회’라고도 불린다.
회사가 이익을 부풀리기는커녕 줄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사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 릭 셜런드가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IR에 참석했을 때 겪은 일이다.
그는 설명회가 끝난 뒤 복도에서 빌 게이츠와 영업최고책임자 스티브 발머를 만났다.
셜런드가 말했다.
“축하합니다.
투자자들을 겁주는데 성공하셨군요.” 그러자 이 두 사람, 손을 쳐들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좋아하는 게 아닌가? 이에 대해 지은이는 “기업투명성을 높이는 주주 책임경영, 즉 윤리경영인 동시에 전략경영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창업 초기의 엄청난 이익 증가세가 언젠가는 끝나고 실적 둔화가 따라올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매출과 이익이 많이 날 때 보수적으로 처리해두면 성장이 둔화할 때도 급락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
인터넷 붐과 거품 붕괴에도 흔들림 없이 탄탄한 실적을 이어가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면에는 회계를 전략적인 윤리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올바로 인식한 경영진이 서 있었다.
” 지난 97년부터 98년까지 나이키는 주가와 매출 급락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당시는 증시도 신발 시장도 호황이었다.
96년 미국 잡지 <라이프>에 12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보도된 데에 이어 97년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하청업체인 태광산업의 베트남공장에서 유독물질 ‘톨루엔’이 기준치의 177배나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소비자와 투자자가 냉철히 돌아섰던 탓이다.
결국 나이키는 세계화 전략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먼저 사회책임경영 전문가인 마리아 에이텔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기업시민권’(corporate citizenship)을 되찾겠다고 선언하고 ‘기업책임부’를 신설했다.
신발공장 종사자의 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등 안전, 건강, 환경, 경영자 태도, 인력개발에 대한 생산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을 어기면 하청 계약을 맺지 않거나 주문 물량을 줄였다.
그러자 주가는 2001년 이후 미국 증시 하락기에도 상승세를 탔다.
매출도 상승세로 되돌아섰다.
지은이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생산 효율성의 증대’라는 세계화의 단맛이요, ‘국제사회의 시민권, 즉 사회적 책임’은 그 뒤에 숨겨진 쓴맛”이라고 설명한다.
“나이키가 단맛만 보고 쓴맛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순간, 시장은 냉혹하게 반응했다.
아웃소싱이나 브랜딩 같이 창의력에 기반을 둔 나이키의 강점은 모두 약점이 됐고 가능한 경영 관련 의사 결정의 폭은 점점 줄어들었다.
상황을 직면하고 사회책임경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도입한 뒤에야, 나이키는 스스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 이 책에 소개된 윤리경영 전략은 회사의 업종과 시장 크기만큼이나 다양하다.
인도의 안과 ‘애러빈드’는 빈민에게 무료 백내장 수술을 해주며 ‘백내장 수술 전문 병원’으로 유명해지면서 유료 병원으로서도 크게 성공했다.
브라질의 백화점 ‘매거진 루이자’는 도시 변두리의 빈민들에게 시중이자보다 파격적으로 낮은 이자로 외상판매를 해 10년여 만에 연 9천억원 매출의 브라질 3대 백화점으로 등극했다.
윤리경영 담당자 스스로 전략가 되어야 내부 고객 즉 직원에 대한 ‘윤리경영’으로 성공한 기업들도 있다.
미국의 ‘서비스마스터’는 박사들을 고용해 청소용역 노하우를 연구개발하고 청소원들을 ‘잡역부’에서 ‘숙련기술자’로 성장시키면서 87년부터 8년 동안 주주가치를 연 82%씩 끌어올렸다.
지은이는 이처럼 윤리경영이 기업전략과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리경영 담당자들이 전략기획 전문가 이상의 전략가가 되어야 ‘윤리경영’도 성공하고 ‘기업전략’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이익과 윤리경영이 상쟁(相爭)하는 가치가 아니라 상생(相生)하는 가치가 되어야 기업이익과 윤리경영 둘 다 지속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대구은행, 유한킴벌리, SK텔레콤 같은 국내 사례가 다뤄지지 않은 건 아쉽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된 해외사례들은 외환위기와 IT붐의 붕괴, 신용 붐의 붕괴를 거쳐 그야말로 산전수전 끝에 살아남은 국내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우리도 하는 일인데’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구은행의 한 간부는 말한다.
“사회책임보고서요, 그런 것 안 써요. 우리가 뭐 하는지는 고객이 알고, 직원이 알고, 주주가 아는데 뭣 하러 그런 것 써요. 우리는 그냥 지역사회, 고객들이랑 굳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대소사를 함께 할 뿐이에요.” 그의 말마따나 ‘윤리경영’은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가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와야 마땅하다.
그런데 언제 한국에서 시장이 저 혼자 제대로 돌아간 적이 있었던가. 외환위기를 겪은 뒤에도 정부와 감독자들조차 때론 시장의 룰을 무시했다.
무리한 경영으로 부도난 LG카드를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살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선 해외 다국적 기업이나 선진국의 시민고객을 의식하는 수출기업, 대기업 중심으로 ‘윤리경영’, ‘사회책임경영’ 논의가 시작됐다.
2008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안전, 환경처럼 국제규격(ISO26000)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씁쓸하지만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것만이라도 어딘가. 국내에서 윤리경영, 사회책임경영 전략을 택한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보답을 받으려면 먼저 시장에 경쟁의 룰부터 제대로 세워야 하기에, 한국에서 윤리경영의 길은 참으로 멀다.
이경숙/ 자유기고가 nwi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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