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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비즈니스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뇌 회전법
[책과삶]비즈니스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뇌 회전법
  • 이경숙
  • 승인 2006.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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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뇌 회전법 시나리오 플래닝 마츠 린드그렌·한스 반드홀드 지음 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 1만2천원 한 대기업 영업직원이 말한다.
“외부 컨설턴트들과 미래 전략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요, 그 사람들은 우리 업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보고서가 나온 걸 보니 그 정도면 우리 직원들도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왜 비싼 돈 주고 컨설팅회사에 맡기는지 모르겠어요.” 한 컨설턴트가 말한다.
“큰 조직은 관성이 너무 세요. 현재 잘하고 있는데, 왜 바꿔야 하느냐는 식이에요. 보고서를 다 만들어놓고 다시 쓰는 일도 많아요. 결론은 임원진이 이미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에 결론을 꿰맞춰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지요.” <시나리오 플래닝>의 지은이, 마츠 린드그렌과 한스 반드홀드가 이들을 만났다면 ‘타이다’의 과정이 부족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타이다’(TAIDA)란 시나리오 플래닝의 기본틀이다.
과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위 변화를 추적(Tracking)하고 분석(Analysing)해 몇 개의 시나리오를 만든 후, 실현가능성이 있고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전망(Imaging)해 전략을 결정(Deciding)한다.
물론 목표 실현에 이르려면 행동(Acting)이 뒤따라야 한다.
비전은 성공확률 50~70% 정도 되는 것으로 헛돈을 쓴다며 투덜거렸던 영업직원은 실은, 미래 전략의 수립 과정 자체가 ‘밖에서 안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이렇게 자신이 일하는 조직과 일하는 분야에만 과도하게 주목하게 되면 장기적인 변화의 조짐을 놓치기 쉽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많은 기업들이 조직 내부에 비즈니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현재에만 주의를 집중하면서 자사의 비즈니스라인 안의 경쟁 환경만을 관찰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안에서 밖으로’의 관점으로는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시장의 변화를 간파하거나 예측하기가 어렵다.
” 임원진이 전략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던 컨설턴트는 자신이 진정 ‘효과적인 비전’을 제시했는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효과적인 비전의 요소로 ‘현실성’, ‘도전의욕의 촉발’, ‘전 직원에 대한 전파력’, ‘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략’을 꼽는다.
특히 비전이 망상에 그치는 위험을 피해야 한다.
“이런 위험은 현실성 점검을 통해 피할 수 있다.
비전이 조직의 과거 역사에 의해 뒷받침되는가? 비전이 미래 환경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들에 조직이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돕겠는가? 현실성 점검이 이루어진 비전은 조직구성원들에 의해 보다 쉽게 수용되고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도 높다.
” 비전은 손에 만져질 듯 구체적이되 100% 성공할 만한 것이어선 안 된다.
오히려 성공 확률이 50~70% 정도 되는 것이 낫다.
이렇게 10~30년을 내다보는 대담한 목표를 지은이는 ‘크고 어렵고 대담한 목표’, 비하그(Big Hairy Audacous Gaol)라고 부른다.
1950년대 초 “앞으로 우리는 일본 제품의 세계적인 이미지, 즉 품질이 형편 없다는 이미지를 깨뜨린 회사로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 선언한 회사는 소니였다.
나이키는 1960년대 “아디다스를 무너뜨릴 것”이라 했고, 스탠포드대학은 1940년에 “우리는 서부의 하버드가 되겠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이 당시 그들에게는 ‘비하그’였다.
정말 효과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했는데도 경영진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실은 변화가 필요한 전략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한 금융기업을 컨설팅했던 경험을 예로 든다.
20개의 전략을 추슬러놓고 가장 추동적인 것과 가장 종속적인 것이 무엇인지 교차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략 수립단계에선 몰랐던 뜻밖의 사실이 발견됐다.
거의 모든 전략이 ‘리더십 전략’에만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이전의 시도들도 실패했던 것이었으나 이 기업은 여전히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외부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 전개가 시스템(기업과 산업 분야, 활동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체계적으로 탐구해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1950년대 허만 칸과 랜드연구소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모두 시나리오 플래닝을 한다.
스키장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키장의 지형, 다른 사람들의 위치와 방향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스키를 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시나리오 플래닝과 전략적인 시나리오 플래닝은 좀 다른 점이 있다.
전략적인 시나리오 플래닝은 의식적으로 이뤄진다.
그에 따라 ‘저항’도 따른다.
지은이는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을 높이려면) 우리는 두뇌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고, 기존의 인식에 도전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인식을 하려면 두뇌가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synapse)를 만들어내야 하고 여기에 힘이 드니 우리의 두뇌에서 저항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 두뇌는 마라톤을 뛸 때보다 시험을 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필사적인 속도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이러한 내 두뇌의, 조직의 두뇌의 저항을 이겨내야 우리는 빠르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살아남는 수 있는 ‘적응력’과 ‘속도’를 얻을 수 있다.
책은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와 여왕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앨리스가 나름대로 힘껏 달리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본 여왕이 말한다.
“아마도 너는 아주 느린 세계에서 왔나보구나.”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에서는 어디든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있으려면 필사적인 속도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고 이 책은 부연한다.
지은이는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게 책을 썼다는데, 실제로 다 읽는 데에는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행간을 건널 때마다 ‘저번에 내가(우리 조직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갖가지 회상과 공상이 솟아나오는 탓이다.
지은이들이 컨설팅업체의 비밀을 보장하느라 모호하게 표현한 문장의 속뜻을 읽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이래저래 지하철 출퇴근길보다는 책상머리에 앉아 읽는 것이 나을 만한 책이다.
이경숙/<머니투데이> 증권부 기자 kslee@money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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