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회사의 멤버십 카드를 가진 사람은 몇몇 상품을 구매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할인받고 나면 공돈 생긴 듯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냥 무한정 할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부여받은 1년간의 멤버십 포인트에서 할인금액이 차감되는 형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모 통신회사의 경우 연간 40만원의 통화료를 사용하는 고객에겐 5만원의 멤버십이 제공된다.
이 금액을 1년에 걸쳐서 쓰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5만원어치의 포인트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모든 돈은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온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멤버십 제도는 통신회사가 고객으로부터 40만원을 받은 뒤 이 중에서 5만원을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5만원을 할인해주는 것이 할인해주지 않는 것보다, 그리고 애초부터 35만원을 내도록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윤을 통신회사에 가져다주기 때문에 통신회사가 이 제도를 고안하여 유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통신회사는 5만원을 다 부담하는 것일까? 통신회사의 멤버십 제공이 단순히 모든 물건을 구매하는 데 할인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통신회사가 선정한 또는 제휴한 몇 개의 상품들을 고객들이 구매할 경우에 할인이 이루어진다.
통신회사가 자신의 통신상품을 판촉하기 위해 멤버십 서비스를 광고하는데, 이 광고를 통해 제휴된 상품들의 광고까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제휴사들은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통신회사가 제휴사가 누리는 이러한 외부 효과를 그냥 넘길 정도의 ‘바보’는 아니다.
통신회사는 제휴사에게 자신들이 부담하는 5만원의 멤버십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길 요구할 것이다.
즉 제휴사의 상품을 구매할 때 할인해주는 금액의 일부를 제휴사가 부담하고 나머지 일부를 통신회사가 부담하는 식의 협정을 맺는 식이다.
광고 효과가 크면 클수록 제휴사가 부담하는 비용이 늘어날 것이다.
만약 제휴사가 누리는 광고 효과가 매우 크거나 매우 중요하다면 할인금액의 전부를 제휴사가 부담하고, 통신회사는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을 수도 있다.
멤버십 카드의 이용 안내 중에 포인트 차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표기되어 있는 상품은 바로 이처럼 제휴사가 모두 할인액을 부담하는 경우로 보인다.
통신회사와의 멤버십 제휴를 통해 제휴사의 시장점유율이 대폭 상승하고 반대로 비제휴사들의 경영이 악화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SK텔레콤을 상대로 한 동네빵집의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는 이와 관련된 사건이다.
동네빵집의 경영이 악화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검토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제휴사의 멤버십 제휴는 제휴사의 비용부담에 의한 할인판매 전략일 수 있다.
이러한 저가 전략에 대해 비제휴사들은 고품질 전략으로 대응하거나 같은 수준의 저가 전략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저가 전략 자체를 불공정행위로 볼 수는 없다.
저가 전략에 대해 저가 전략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면 낮은 생산성의 사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축소되고 퇴출되는 것은 시장원리에 부합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통신회사가 가격할인분의 일부를 부담한다면 생산성과 무관하게 통신회사와 제휴했다는 점만으로 제휴사는 가격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통신회사와의 멤버십으로 인한 광고효과가 제휴사의 시장지배력 상승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
이 경우 통신회사가 특정 업체에게만 멤버십을 허용하고 다른 업체에게는 멤버십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통신회사 입장에서는 누구와 멤버십 제휴를 할 것인지는 고유의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신회사가 원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시장의 판도에, 특히 영세업체들의 경영에, 큰 충격을 주게 된다면 여론은 독점적 거대 통신회사가 영세업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동네빵집과 SK텔레콤의 분쟁은 우선 할인폭을 기존의 20%에서 10%로 내리는 것에 양측이 합의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동네빵집 중에서 희망하는 업체는 SK텔레콤의 멤버십 제휴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SK텔레콤이 멤버십 제휴 관리시스템 설치 비용을 부담하며, 대형체인 빵집의 할인율도 동일한 10%가 부여되고 빵값 할인 비용을 동네빵집이 부담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신문은 ‘동네빵집,이통사 이겼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멤버십 제휴의 기회가 동네빵집에도 주어진 점은 광고 효과에 관한 한 동네빵집도 공정한 경쟁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해결책이지만, 이름 없는 동네빵집이 대형체인을 가진 빵집만큼의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거나 줄어든 할인율 때문에 이동통신사의 고객이자 빵집의 고객인 소비자, 그 중에서 대형체인의 빵집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확실하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