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에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해 우리금융지주의 매각시한을 3년 더 연장한 이후 한동안 잠복해있던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우리금융지주, 특히 그 핵심 기업인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 구조조정 역사의 산증인이다.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이전에 영업하던 대표적인 민간 상업은행 2개를 한 울타리에 비벼 넣은 은행이다.
먼저 1999년 1월에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한빛은행이 된 후 다시 2001년에 한빛은행이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명칭을 우리은행으로 개칭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약 8조원에 육박한다.
1998년 9월에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에 대한 증자 지원으로 약 3조 3천억원 정도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불과 2년 뒤인 2000년 12월 금감위의 완전 감자 명령에 의해 이 자본금이 전액 감자된 후 추가로 4조 6천억원가량의 돈이 투입됐다.
우리금융지주 전체로 보면 총 투입된 공적자금은 12조원에 달한다.
우리금융지주는 그 후 수차례의 지분 매각을 통해 정부지분을 시장에서 매각해 현재는 예금보험공사의 지분율이 약 78%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이다.
2007년 3월로 다가온 매각 시한 최근 정부가 부쩍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를 언급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명시된 매각시한 때문이다.
지난 2004년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하면서 우리금융지주의 매각시한을 3년 더 연장해 2007년 3월(공자위 동의시 1년 더 연장 가능)로 늦추었는데 그 시한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금융지주는 그때 매각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와 정확히 동일한 이유로 지금도 매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누구나 다 잘 알다시피 물건을 살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고, 돈 있는 사람은 자격이 안 되고, 적당히 흩어서 팔면 돈을 많이 못 받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계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식매각과 관련해 정부가 꼭 지켜야 하는 법률상의 제약조건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현재 은행 혹은 은행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는 은행지주회사(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행지주회사임)에는 강력한 소유규제가 걸려 있다.
은행업을 영위할 건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닌 한 누구도 10%를 초과해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은행업을 영위할 건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이런 한도를 초과해 은행 지분을 심지어 100%까지도 소유할 수 있다.
여기서 건전한 자격이란 기본적으로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을 영위하는 등 산업자본 활동을 하지 않아야 하고, 법을 어긴 적이 없고, 자금조달의 경위가 투명할 것 등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직면한 제약은 공적자금의 조성, 집행, 회수 등과 관련해 최소비용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물론 협의의 최소비용의 원칙은 투입에만 적용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연히 조성부터 최종회수까지 공적자금 집행의 전 과정에 걸쳐 최소비용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가장 비싼 값에 정부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금융지주 주식을 매각하면서 돈을 많이 받으려면 주식을 모래알처럼 흩뿌려서 팔기보다는 눈덩이처럼 꽁꽁 뭉쳐서 팔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사는 쪽에서 확실하게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좀 더 비싼 값을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국민주 방식으로 전량을 매각하는 것은 은행경영의 주체가 없어진다는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최소비용의 원칙을 충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비싼 값을 받으려면 결국은 돈 있는 사람에게 우리금융지주를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돈 있는 사람은 산업자본, 국내의 거대은행, 그리고 외국의 금융자본 등 대략 세 부류로 구별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직접적·간접적인 결격 사유가 있다.
첫 번째 후보인 산업자본은 금융지주회사법상의 적격성 조건에서 일찌감치 탈락이다.
두 번째 후보는 국내의 거대은행이다.
이들은 돈도 있고 이미 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격성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독과점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국내 은행산업은 이미 심각할 정도로 독과점화가 진행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외환은행 매각이 호랑이 등에 타면서 이런 독과점화는 더욱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환은행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국민은행은 이미 공룡이다.
하나은행 역시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남부럽지 않은 공룡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금융지주라는 또 다른 공룡이 이들 혹은 여타의 다른 은행에 매각될 경우 은행산업은 그야말로 현대판 ‘쥬라기 공원’이 되고 말 것이다.
소수의 공룡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대수의 법칙에 의존하는 예금보험제도가 제대로 될 리 없고 따라서 금융산업의 체제적 위기 가능성은 급증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후보는 외국의 금융자본이다.
이것 역시 문제다.
이미 국내의 많은 은행들이 직간접적으로 외국 자본의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봐도 알 수 있는 외국계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도 분류기준에 따라서는 외국은행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순수 국산은행마저 외국 자본에 넘긴다는 것은 국민적 자존심과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건전한 금융자본 육성이 과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의 방법은 이제까지 언급한 제약조건중 하나를 눈을 질끈 감고 과감하게(?) 무시하는 것이다.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자는 것은 최소비용의 원칙을 우회하자는 것이고, 국내은행에게 매각하자는 것은 독과점화를 무시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금산분리 원칙의 재고’ 운운하는 주장은 우리금융지주를 재벌에 넘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모든 제안에 반대한다.
국민주 방식의 매각은 최소비용의 원칙 문제 이외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기 때문에 매각 자체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고, 독과점화의 심화나 재벌의 은행지배는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결국 최종까지 남는 것은 외국의 금융자본에 매각하거나 아니면 매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중 필자는 후자가 그래도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국유민영화’이다.
소유권은 국가가 갖되, 운영과 관련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민간의 요소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방안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당장 현재 우리금융지주가 운영되는 모습이 국유민영화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체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영환경을 보다 시장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좋은 경제정책은 물론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때때로 차악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은행의 매각이 이처럼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육성된 건전한 금융자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것은 과거 관치금융에 찌든 개발연대가 우리에게 물려준 여러 악습 중 아직도 청산되지 않는 유물이다.
결국 제대로 된 금융자본을 육성하는 것이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를 올바로 추진하기 위한 정공법인 것이다.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좁은 문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섣불리 은행산업을 쥬라기 공원으로 만들거나 은행을 재벌에 팔아넘기는 것은 재앙으로 향한 탄탄대로를 선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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