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그는 지금 프랑스에 있다.
) 만약 그가 무대 위에 있었다면 난 십대 소녀처럼 ‘언니~짱!’ 하고 소리 질렀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경제학자라 무대에 올라가지 않는다.
) 제목도 어찌 이리 멋지게 달았을까! 흔히 ‘대안경제’라 번역되는 ‘L’Alter-economie’를 ‘다른 경제’라고 해석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노대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표현대로, 그 덕분에 이 책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특정 국가의 냄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저자들은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른 경제’ 진영에선 유명한 사람들이다.
글머리와 결론 부분을 쓴 사람은 알랭 까이에이다.
파리10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그는 유럽에서 수십 년 동안 사회경제와 연대경제를 둘러싼 논의를 주도했다.
“저항에서 제안으로, 제안에서 대안으로”라는 멋진 구호를 외친 이는 귀스타브 마씨아 ‘시민원조금융과세단체(ATTAC)’ 부회장이자 지리학자이다.
인간의 생계를 보장하는 ‘연대의 경제’ 경제 성장과 시장 실패, 정부의 재분배 실패가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논의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유명한 아마르티아 센이 참여했다.
그는 경제성장이 자연환경과 인간관계의 파괴를 대가로 요구하게 되면서 경제성장에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되었다며 GDP에 맞서는 더 종합적인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쉽게도 센의 글은 이 책에는 빠져 있다.
) 한편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원의 장 루이 라빌 소장은 경제가 시장, 국가(재분배), 호혜성의 영역으로 이루어지며 이 세 축 사이에 균형이 깨질 때 문제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21명의 지은이들은 사회적 일자리, 제3섹터, 마이크로크레디트, 공정무역,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제각각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주장을 펼친다.
그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연대의 경제’다.
이게 뭘까? 정의는 좀 모호하다.
까이에의 말을 종합하자면 “인간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 즉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켜 살아남기 위해 즉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지금의 경제와는 다른 경제’일 것이다.
까이에는 ‘연대의 경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연대의 경제가 무엇에 반대하나’라고 묻는 편이 낫다고 쓴다.
연대의 경제가 반대하는 것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시장만능주의 반대, 국가만능주의 반대, 가족만능주의 반대, 자선주의 반대, 불법성 반대!” 이 책은 훌륭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대안을 주로 담고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로 대표되는 연대금융, 지역화폐, 공정무역, 지역 주도의 경제 및 사회활동이 그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친숙한 이슈인 연대금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자.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사회연대은행, 신나는 조합, 실업극복국민재단, 오이코크레디트 같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형태로 연대금융이 국내에서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 국내에선 걸음마를 떼고 있는 정도의 발달 단계에 있지만, 그 역사가 20년에서 40여년에 이르는 해외에선 마이크로크레디트가 공동체 지향적인 것부터 환경적 가치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 기부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 기업의 잠재고객을 늘리고자 하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와중에 심지어 어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가난한 이들의 구매력을 향상할 목적으로 투자한다’는 이유로, 사회변화포럼(INASIA) 같은 단체로부터 ‘마이크로크레디트계의 맥도날드’라는 지탄을 받기도 한다.
아마도 시티그룹이나 ICICI 같은 대형은행이 INASIA의 비판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가난한 사람들을 ‘고객’이 아닌 ‘일시적 기부 대상’으로 보는 국내 현실에서 이러한 ‘비난’은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다.
해외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들이 시민사회적 압력에 따라 생존 전략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 이슈에 대해 국내 기업들은 이제야 겨우 보고서를 내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여하간 이 책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진영에 세 가지 활동을 권고한다.
요약하자면 우선 홍보의 강화가 필요하다.
사례조사를 통해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려 사람들의 참여를 넓힌다.
세제 혜택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 운동을 할 필요도 있다.
생산금융, 유통, 소비 등 전체 경제 속에서 융화, 통합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FTA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된 우리 상황에선 ‘공정무역’에 대한 논의도 함의가 깊다.
이 책은 국제무역 활성화로 인해 벌어지는 개발도상국 산업의 황폐화와 농민 등 생산자의 몰락을 막기 위해 ‘공정무역’을 활성화해 무역관계의 균형을 찾자고 주장한다.
여기서 공정무역이란 이러한 원칙을 가진다.
FTA 논의 속 ‘공정무역’ 관심 기울여야 “가능한 한 중간상인이 개입하지 않도록 생산자과 소비자 간에 직접적 관계를 형성한다.
정당한 가격제도를 통해 생산자와 그 가족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한다.
임금노동자가 생산자일 땐 최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규범에 따른다 등등.” 이 책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지속가능한 개발(경영)’ 진영과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피에르 윌리엄 존슨(공정무역연구자)의 주장이다.
두 분야가 결합된다면 환경과 사회, 소비자와 생산자를 위해 더 높은 질의 시스템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완독(玩讀)하는 건 참으로 쉽지 않다.
참여한 필자가 각계의 고수인지라, 영어로 치면 초급회화반이 아니라 전문클리닉 수준이다.
가령, 국내에선 들어본 사람도 적은 지역화폐 ‘레츠’(Lets)가 아르헨티나에서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마피아의 위폐 제조 때문’이라는 식이다.
(아르헨티나에선 2002년 한때 총 인구의 11%가 지역화폐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활성화된 적이 있었다.
) 따라서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세계화의 두 얼굴’, ‘자본의 반격’ 같은 책들을 이 책보다 먼저 읽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P.S.비매품인 이 책은 실업극복국민재단에 요청하면 1만원의 기부금을 내고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
발송료를 별도로 내지 않아도 된다.
담당자 전화번호는 02-338-3995다.
) 이경숙/사회연대은행 선임연구원 nwi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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