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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나
상속세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나
  • 윤종훈 시민사회경제연구소
  • 승인 2006.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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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의한 경영권 승계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한겨레 신세계가 법대로 1조 원의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순간적으로 신선함을 느꼈다. ‘재벌 = 편법증여에 의한 탈세’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알아서 법대로 세금을 내겠다니! 그런데, 뒤이어 나온 말이 이상하다.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세금을 내겠단다. 법대로 세금 내는 것과 경영권 승계가 무슨 상관이 있지? 신세계의 발표가 나오자 전경련은 높은 상속세가 기업인의 의욕을 꺽는다며 상속세 인하를 주장하고 나섰다. 보수언론은 한 술 더 떠서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기아자동차의 예를 들며 ‘주인 없는 기업’은 대부분 망한다고도 한다. 심지어 상속세는 자식을 낳아 키울 동기를 없애는 반윤리적인 세금이라고 까지 몰아붙인다. 상속세가 보수언론에 의해 졸지에 패륜아가 되어 버렸다. 경영권은 재산권과 다르다. 재산권은 세금을 내고 상속될 수 있지만, 경영권은 상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영권은 주주나 이해 당사자가 경영 능력이 있는 자에게 부여한 ‘권한’이기 때문이다. 경영권의 전제 조건은 돈이 아니라 경영 능력이다. 아무리 많은 주식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경영 능력이 없으면 경영권도 없어야 한다. 한주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할지라도 경영 능력이 있으면 경영권이 주어질 수 있다. 법대로 상속세, 경영권은 자동 승계? 세금만 내면 경영권을 승계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천박한 졸부의 인식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좁은 의미의 가족기업(설립자의 후손이 최고경영자가 된 기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는 가명으로 포드자동차에 입사하여 다른 신입사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설립자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이 주어질 수 없듯, 설립자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자의 자격이 박탈당하는 것은 아니다. 포드와 도요타의 경우와 같이 소유에 의한 경영권 승계가 아니라, 능력에 의한 경영권 승계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외국에서 공부한 것 밖에 없으며, 실전 경험 쌓는다고 인터넷 사업을 벌였다가 수백억 원의 손실을 계열사에 떠넘긴 채 30대 중반에 임원 자리에 오른 사람을 국내 최대기업의 경영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무능한 가족에게는 일을 시키지 말아라. 회사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월급만 주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일부 보수 언론은 가족기업이 전문경영인의 비가족기업 보다 경영성과가 좋다는 S&P 보고서를 인용하며 재벌체제를 적극 옹호하고 나서기도 한다. S&P 보고서가 말하는 가족기업은 창업자가 경영하는 기업, 설립자 자손이 최고경영자인 기업, 설립자 자손이 직접 경영을 하지는 않지만 이사회의 일원으로 통제권만 행사하는 기업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도 가족기업이다. 창업자가 경영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미국 부시 대통령의 상속세 폐지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였으며, 자손들에게는 1천만 달러만 남겨 놓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워렌버핏은 42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 전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아들에게는 ‘최고경영자가 아닌 회장’을 맡겼다. 이 역시 가족기업에 해당된다. 5대째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진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 역시 재벌이 가장 부러워하는 가족기업이다. 그러나, 발렌베리 그룹의 주식 소유자는 발렌베리 일가가 아니라 발렌베리 재단이다. 이로 인해 발렌베리 그룹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자연스럽게 재단을 통하여 사회에 환원되고 있다. 또한, 지주회사를 통한 투명한 지배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전문경영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위의 기업들은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가족기업’이지만, 우리나라의 재벌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가족기업’이라는 단어 하나로 위의 기업들을 우리나라 재벌과 억지로 등치시키고 있다. 빌게이츠, 워렌버핏, 발렌베리 사람들이 들으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상속세 때문에 창업자의 지분이 감소되면 경영권이 불안정하여 결국 기업이 망할 것이라고도 한다. 가장 존경받아야 할 기업인 유한양행을 보자.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재산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였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아 수십 년간 알짜 기업으로 키워오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의 설립자 아들인 도요타 쇼이치로의 지분은 현재 0.4%에 불과하고, 도요타 가문의 전체 지분은 2%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높은 상속세(현재 일본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 이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70%였다)가 설립자 가문 지분 감소의 주요 요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생각대로라면 도요타는 망해도 벌써 망했어야 한다. △EPA
상속세 폐지 주장하는 보수언론 기아자동차를 예로 들어 ‘주인 없는 기업’은 대부분 망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 망한 예를 들자면 ‘주인 있는 기업’이 훨씬 많다.
쌍용, 진로, 동아, 해태, 삼미 등은 철없는 2세가 세상물정 모르고 겁 없이 덤비다가 말아먹은 기업들이다.
기업의 승패는 최고 경영자가 유능한 경영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갈라진다.
못난 목수가 연장 탓하듯 기업의 운명을 상속세 탓으로 돌리지 마라. 재벌들은 자기 혼자 잘나서 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재벌키우기 정책이 재벌 태생의 비밀임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재벌키우기 정책은 특혜 금융, 수출보조금, 세제지원, 환율방어 등 국민의 세금을 재벌들에게 쏟아 부은 것을 말한다.
드라큘라가 피 빨아먹듯이 정경유착으로 수십 년간 국민의 세금을 빨아먹고는 이제 와서 자식에게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주려는데 세금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온 가족이 고생하여 장남 하나 출세시켰더니 자기 혼자 잘 났고, 자기 혼자 잘 살겠다며 가족을 외면하는 패륜아와 뭐가 다른가. 상속세가 반윤리적인가,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자가 반윤리적인가. '아무리 재벌 총수가 밉더라도 기업이 외국인에게 통째로 넘어가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재벌 문제를 아무리 설득력 있게 말해도 이러한 답답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재벌들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중심의 투명한 지배구조로 전환하고, 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을 분리하여 지분을 정리한다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항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는 식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잠시 뒤로 접고,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불안하다는 재벌의 엄살에 대하여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주식을 물려주면서 상속 증여세를 내는 경우 대부분 주식으로 물납(物納)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액이 약1조8천억원인데(15일 종가 기준), 이를 이재용 씨에게 물려줄 경우 약 9천억 원의 주식을 상속 증여세로 납부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은 그만큼 줄어들겠지만 상속 증여세로 납부된 주식은 국가의 소유가 된다.
따라서, 국가가 이를 어떻게 처분하느냐에 따라 삼성전자의 지분이 영향을 받는다.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여 국가 소유의 주식을 여기에 넘기는 방안을 제기하고자 한다.
삼성전자의 직원은 약8만2천600명으로 9천억 원의 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넘기면 1인당 약1천1백만 원씩 돌아간다.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이 5천만 원이므로 충분히 감당할 만한 금액이다.
만약 감당할 수 없는 직원이 있다면 대부 형식으로 지급한 후 분할로 상환 받으면 될 일이다.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지분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항해서는 우호지분이다.
그러나, 투명경영 확보의 입장에서는 재벌 총수에 대항하는 지분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흔들리고 회사가 외국인에게 넘어갈지 모른다는 재계의 엄살을 그냥 엄살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너무 여리다.
비록 엄살일지언정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윤종훈 시민사회경제연구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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