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혼성
프랭크 레흐너 외 지음, 부글북스 펴냄, 1만8천원
9.11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경악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이 테러는 오사마 빈 라덴이 저질렀다는 주장이 나왔고 그는 무슬림이었다. 이슬람이 기독교가 국교인 미국을 공격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슬람 하면 테러를 생각했고 미국은 모든 이슬람을 상대로 전쟁을 하려는 듯이 보인다. 이런 현상을 ‘문명의 충돌’이라고 부른 학자가 있다. 바로 새뮤얼 헌팅턴이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그는 96년 <문명의 충돌; 세계 질서의 재편>이라는 책을 통해 냉전의 종언과 함께 국제정치의 가장 심각한 분쟁은 문명들 간의 충돌이라고 주장했다. 문명권을 구분하는 1차 기준은 종교이며 기독교 서구문명 대 이슬람 및 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충돌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문명의 혼성>(원제 WORLD CULTURE)은 이런 새뮤얼의 주장이 빗나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문명 충돌은 없으며 오히려 문명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 프랭크 레흐너와 존 볼리는 미국 에모리대 사회학과 교수들로 같은 문명 안에서도 헌팅턴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고 주장한다. ‘정교회’의 불가리아가 미국과 연합하여 유럽연합에 가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문명 충돌은 없었다는 것이다.
테러를 저지른 무슬림들을 이슬람 문명으로는 볼 수 없으며 그들의 미래 비전은 하나의 온전한 문명이 나아갈 길로는 너무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근본주의도 세계문화 안에서 움직이며 세계문화의 힘은 근본주의에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월드컵 축구를 예로 들고 있다.
축구는 결코 평화와 형제애에 기여하는 나팔소리가 아니지만 이 토너먼트는 세계문화에 엄청나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문명 충돌을 주장했던 새뮤얼 헌팅턴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인 책.
이재현 기자 yjh9208@economy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