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개별 증권사의 직접 참여로 가닥을 잡았지만 중소형사 비용 부담 문제, 한국은행 준검사권 부여 등 핵심 난제들을 고스란히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지급결제 방침을 가장 반겨야 할 증권업계에서도 환영의 목소리보다 외면의 제스처를 취하는 업체들이 많다.
은행권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합의안이 실질적으로 중소 증권업체들의 참여를 가로 막고, 대형사 위주 재편을 가속화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증권산업에 대한 한국은행의 검사권을 강화한 것은 대표적 독소조항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재경부는 이번 합의안 도출을 위해 은행권의 요구를 적극 수용했다.
이번 안은 모든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되 은행 공동결제망에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기존 일괄 참여안이 리스크 관리를 어렵게 한다는 한은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은행 자금의 과다한 증권업계 유입을 막기 위해, 개인자금에 한해서만 지급결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특히 한은에게 참여 증권사에 대한 자료제출요구권과 공동검사요구권을 갖게 한 것은 증권업계 반발의 진원지다.
물론 한은의 요구권은 통화신용정책과 원활한 지급결제시스템을 위해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러나 검사권의 구체적인 범위를 규정하기 쉽지 않아, 자칫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세나오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그간 경험에 비춰 봐도 당국의 검사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며 “한은의 검사권에 제한을 두겠다고 했지만, 정책이란 것이 딱 꼬집어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은에게 검사권을 준 것은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은행업계의 입김만 더 강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증권사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 문제도 해소되지 않은 논란거리다.
한국증권금융을 통한 공동 참여가 아니라 개별 증권사들이 직접 참여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소형 증권사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금융 결제망 참가비를 할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열악한 재무구조를 볼 때, 할인을 통한 배려만으로는 참여를 유도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자금력을 갖춘 대형 증권사의 독주로 이어질 경우, 증권업계의 구조조정만 가속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도, 대형사 위주로 증권업계가 재편될 경우 금융상품에 대한 선택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대형사 입장에서는 비싼 지급결제 비용을 지출하더라도 영업력 확장을 위해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중소형사들은 사정이 다르다”면서 “당장 순이익 창출 규모가 적은데 대규모 투자에 나설만한 자금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현재 중소형사에는 대형사들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만든 다양한 혜택의 상품이 많다”면서 “자통법 시행 후 대형사 위주로 급작스럽게 증권업계가 재편될 경우, 상품의 선택 폭이 줄어들어, 고객들도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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