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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T칼럼] '정보의 안정성'을 생각한다.
[DOT칼럼] '정보의 안정성'을 생각한다.
  • 정형문(한국EMC대표)
  • 승인 2000.06.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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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이벤트가 많은 IT업계에서 단골로 쓰이는 세미나 주제가 하나 있다.
IT산업 발전의 주체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IT분야만 연구한 미국의 데이비드 모쉘라에 따르면 IT업계는 10년을 주기로 그 주체가 바뀌어왔다고 한다.
1970년대는 시스템, 1980년대는 PC, 1990년대는 네트워크 중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70년대엔 IBM, 80년대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90년대엔 시스코와 오라클 같은 회사가 시장을 주도했다는 설이다.
이는 컴퓨터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진화적 현상이며, 컴퓨터 시장의 욕구에 부합하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2000년대부터는 정보 중심 시대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정보 중심은 앞서 말한 과거의 주도세력과 판이하게 다르다.
즉 IT산업의 주체가 공급업체에서 고객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혁명적 변화이다.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주도권이 바뀐 것이다.
설마 그런 사태가 일어나랴 지금 우리가 e-비즈니스 시대에 살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국경도 없고 밤낮도 없다는 이 시대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의 연륜만큼 쌓여 있는 각종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전세계에 깔려 있는 은행의 지점망을 보자. 24시간 온라인이 가동돼야 하고, 24시간 고객서비스는 계속돼야 한다.
각각 다른 장소에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관리해야 하고, 경영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는 쉼없이 수정돼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웨어하우징(DW),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등으로 일컬어지는 토털 솔루션을 도입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이러다간 미국의 엘 고어 부통령이 말했다는 ‘익스포메이션’(Exformation), 즉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도 중요한 정보가 그걸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거나, 아예 정보에 짓눌려 정보를 구하려는 생각조차 안 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스토리지 분야에서만 10년 넘게 일해온 사람으로서, 정보의 통합과 활용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저장하고, 어떻게 관리하며, 어떻게 비상사태에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보가 얼마나 빠르게 늘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늘어나는 정보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스토리지를 구입해 운용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발상인지 모르고 있다.
정말로 재난을 당하면, 복구할 수 있는 솔루션을 보유한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는 토네이도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없다고 하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또다시 심각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지 모르지만, 그런 태도가 위험을 키운다.
불가항력적인 사태가 일어나면 모든 게 끝장이란 걸 알면서도, 설마 그런 사태가 일어나랴 하는 안일한 생각이 결국 형식적인 재난복구 대책을 낳는 것은 아닐까. 스페인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가진 은행이면, 반드시 재난복구 대책을 갖추도록 법제화하고 있고, 실제로 은행마다 활용가능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강력히 추진한다지만, 유사시에 확실하게 적용할 수 있는 대비책인지, 아니면 최악의 경우에 최소한 고객의 정보만이라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는 수준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봤는가 한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1테라바이트라고 한다.
그것도 매년 두세배씩 늘어날 데이터를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하고, 보호하고,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을 미리 수립해놓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산센터를 운용한다는 가정 아래서 그렇다.
스토리지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우리나라는 수 테라바이트당 한명 꼴로 스토리지 운용자가 배정돼 있는 실정이다.
초일류 기업,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업이란, 거창한 캐치플레이즈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사람의 손을 빌려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면, 아니 이 정보의 홍수 시대가 모두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인정한다면, 지금 당장 정보방호 대책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부족한 전산요원이 미국에서만 50%, 유럽에서는 12%라고 한다.
이들이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이민법까지 고쳐가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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