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2-20 15:50 (금)
[김갑수의책읽기] <노래의 책> <알코올>
[김갑수의책읽기] <노래의 책> <알코올>
  • 김갑수(시인)
  • 승인 2001.06.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생에 한번쯤은
코미디언 이기동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세대구분을 한다지만, 문화 언저리에도 그런 잣대가 있다.
문지와 창비의 지난 날 위광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그것이다.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정말 모른다.
그들의 계간지에 글이 실린다는 것, 그 곳에서 책을 낸다는 것, 혹은 그 동네 어른들을 어디 술집에서 얼굴이라도 한번 본다는 것. 그것은 문청(혹은 멍청) 내지는 지식인연 하는 사람들에게 밤잠을 설칠 굉장한 사건이었다.
그때의 위광은 진정한 권위와 존경심의 산물이었다.


그런 문지와 창비가 근년에 들어 꽤나 두들겨 맞았다.
문지는 서울대 학벌을 배경으로 한 문화계의 권력집단이다, 창비는 연이은 밀리언셀러 발간 이래 상업주의에 젖어들었다 등등. 강준만, 김정란, 권성우만 그러는 게 아니다.
오히려 대학생들이 앞장 서 비난의 풀무질을 해대니 이거야말로 금석지감. 이 짧은 지면에 이른바 문학권력 내지 상업주의 논쟁에 의견을 보탤 수는 없다.
다만 소박하게 내 입장을 들키자면, 정신없이 쏟아져나오는 신간의 홍수를 보라. 그래도 그만한 양서를 내는 출판사가 국내에 몇이나 더 있는지를. 문지, 즉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를 내기 시작했다.
대산재단의 지원금 덕분일까. <닥터 지바고>나 <개선문> 같은 안전빵으로 장사할 생각은 아예 없는지 기존 세계문학전집류와 뭐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완전히 낯설거나 너무도 익숙한 저자들로 구성된 것. 가령 로렌스 스톤,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조라 닐 허스턴 같은 낯선 작가를 앞세운 것은 기존의 진부한 고전 명단에 대한 반성의 소산일 터. 그리고 치밀한 각주와 더불어 하이네나 아폴리네르의 시집 완역본을 명단에 넣은 것은 이 땅에서 이발소 액자나 여고생 편지를 연상시키는 두 시인의 부당한 팔자를 고쳐보고자 하는 야심인 듯. 나는 이 새롭고 의욕적인 세계문학전집에서 하이네의 초기시편 <노래의 책>(하인리히 하이네 지음)과 아폴리네르의 첫시집 <알코올>(기욤 아폴리네르 지음)을 먼저 손에 들었다.
사람답게 살려는 한 일생에 한번쯤은 그런 엄청난 시혼의 블랙홀에 빠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욕구. 그들만 그러한가. 릴케, 말라르메, 엘뤼아르…. 이름만 익숙하지 어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문지의 이름값을 믿고 한번 달려들어 보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