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섬유의 두께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125㎛(마이크로미터). 잠시도 정신을 흐트려선 안된다.
접속함체 안에 두가닥의 푸른색 유리섬유를 들이민다.
두 선이 만나는 미세한 순간, 양끝이 녹아들어가며 둘은 하나로 맞붙는다.
그 찰나의 순간, 다시 붙은 섬유 속으로 전화구리선 3600개 분량의 광신호가 빛처럼 빠르게 뚫고지나갔으리라.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린다.
숨을 가다듬고 청, 등, 녹, 적, 황의 오색 섬유 12가닥을 하나하나 차례차례 연결한다.
3시간여 동안 마비돼 있던 안양시 수만 네티즌의 초고속망이 다시 소통되기 시작한다.
6월24일 2시40분20초.
초고속망 산파이자 119구조대 “보람이라면…. 수십만의 인터넷 사용자, 휴대전화 가입자가 원활하게 통신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랄까요.” (주)한전KDN 수원지점 동부고객지원센터의 리더인 권오환(28)씨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초고속망의 미세한 광섬유와 정교한 장비를 다뤄야 하는 직업의 성격 탓일까. 어지간한 일에는 마음의 동요를 내비칠 것 같지 않은 신중함이 풍겨나온다.
“한국통신, 두루넷 같은 초고속인터넷이나 SK텔레콤, LG텔레콤 같은 이동전화를 사용하려면 광케이블이 필요합니다.
그 광케이블을 잇고 점검하고 장비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게 통신선로 산업기사의 역할이지요.” 초고속통신망을 사람의 신경망에 비유한다면 그가 하는 일은 의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초고속망 시공전문가는 초고속망의 산파이자 응급구조원이다.
그래서 권씨가 걸린 직업병이 휴대전화 중독증이다.
언제나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자다가도, 데이트하다가도 휴대전화가 울리면 바로 현장으로 출동한다.
정보사회에서 정보 소통이 끊긴다는 것은 사람의 호흡이 중단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야간작업도 빈번하다.
‘살아 있는’ 회선들을 검사하고 치유하려면 정보교류가 가장 적은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로 긴급복구를 위해 비오는 날 작업하다가 아찔한 위험을 느낀 적도 있었다.
고압선에서 빗물을 타고 내린 전류에 깜짝 놀라 전봇대를 놓친 것이다.
물론 안전띠를 매고 있어서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런 긴장과 위험을 감내하는 것은 일의 보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일에 재미와 흥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적성이 맞아야 할 것이다.
“우선 집중력이 높아야 합니다.
미세한 광섬유를 다루는 만큼…. 또 활동적이어서 앉아 있는 것보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야겠지요. 기술로서 능력을 인정받겠다는 승부욕도 필요합니다.
쉼 없이 발달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따라가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거든요.” 정보통신교육원에서 선로설비과정 수료 권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살 때 초고속망 시공전문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경원대 환경공학과에 합격했지만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부설 정보통신교육원 진학을 선택한 것이다.
그에겐 전망이 불투명한 ‘학벌’보다 뚜렷한 ‘전문성’ 확보가 더 중요했다.
정보통신교육원 선로과를 수료한 뒤 권씨는 공군에서 정보통신 가설병으로 복무했다.
한전KDN의 4년 경력을 합해 거의 7년여 동안 한가지 일에 몰두해온 셈이다.
그동안 유선설비기사(지금은 산업기사), 정보통신기능사, 선로기능사 등 세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7년 경력이면 프로라 할 만할 텐데도 그의 책상 위에는 여전히 정보통신 분야 신간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GPS(위치정보시스템), IMT2000 사업이 본격화되면 사업체마다 또다시 선로를 깔고 제각기 다른 장비를 설치하겠지요. 그때를 대비하려면 미리미리 책이나 사이트를 보면서 공부를 해둬야 해요. 어떤 기술방식이냐, 또 어떤 장비를 쓰느냐에 따라 알아야 할 내용이 다 다르거든요.” 그의 직업이 가진 또하나의 매력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무술가나 게이머 같은 ‘고수’의 세계가 그러하듯.
경기도 광주에 있다. 교육비와 기숙사비 전액이 정보화촉진기금에서 지급돼 무료로 전과정을 마칠 수 있다. 취업률은 100%다. 수료생들은 주로 한국통신, 한전KDN, 데이콤, 하나로통신 등 시공업체에 취직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산업기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2년짜리와 기능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1년짜리가 있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교육원을 2003년부터 기능대학으로 개편하고 교육인원을 연간 400명에서 6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초고속망 시공 인력을 적극 양성하기 위해서다. |
추천도서 <첨단고도정보통신> 강희조 최용석 지음, 복두출판사 <21세기 광통신 실무설계> 진종중 지음, 동일출판사 <케이블 TV 공학> 손병태 박계원 지음, 세진사 <광통신> 구인모 남기진 외 지음, 복두출판사 <기초통신공학> 주창복 지음, 광문각 추천사이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www.etri.re.kr 정보통신부 www.mic.go.kr 전자신문 www.etnews.co.kr |
저작권자 © 이코노미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