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다. 그것이 고통 받는 당사자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다.
그리고 그 고통은 끝이 안 보인다. 끝이 보이면 감내하는 것이 훨씬 용이할 것이다.
고난과 고통은 그래서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고난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과정인지라 그것을 감내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고통은 기약 없는 - 무의미한 삶의 연속이다.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시달리는 사람, 개인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빈곤의 고통 - 사회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이나 애인의 죽음 앞에 절망하는 사람 등 고통은 그야말로 불가항력적이다.
또한 고통의 당사자로서는 그 고통이 절대적이다. (상대적 잣대로 평가가 불가한 것이다)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은 끊임없이 그 고통을 호소하지만 상대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거나, 상대의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로서의 말이 아닌 오로지 절규하고 비명을 쏟아낼 뿐이다.
여기서 저자인 엄기호는 그 고통 받는 사람의 곁- 주변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통 받는 사람의 절규를 들어야만 하지만 그것은 대화가 아니기에 본인의 삶 또한 피폐해진다.
우리는 여기서 고통 받는 사람,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며 또한 어떤 자리에 위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 책은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서가 아니다.
때문에 첫 장 고통 받는 사람들의 그 지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때는 상당히 고통스럽다.
또한 그 고통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상업화 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되는 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고통은 황색언론과 인터넷 공간을 통해 경쟁적으로 전파되며 여기서 고통은 그야말로 ‘누가 더 고통스러운가?’를 경쟁하는 경연장 – 고통의 올림픽으로 변질된다.
고통은 황색언론과 인터넷 공간에서 점수가 매겨지며, 낮은 점수를 받은 고통은 고통이 아니게 된다.
고통의 당사자가 겪는 절대성, 외로움은 여기서 철저히 무시된다.
고통을 대하는 사회의 성숙도라는 측면에서 이 사회는 대단히 천박하고 저열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엄기호는 지식인의 윤리와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그 절대성으로 인해 고통 받는 당사자가 표현하지 못하는 절규를 언어로서, 말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고통의 당사자와 함께 그 곁을 지키는 사람과 연대해야 하며 그 곁의 곁 – 그 주변을 두텁게 하는 것이 사회가 해야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고통 받는 당사자의 상황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어설프게 그 당사자의 해결사를 자임할 수 없다.
또한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올 수도 없다.
그러나 여태까지 연대방식에 얼마나 오류가 심했는지 우리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기를 권한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지음, 나무연필 발간, 16,500원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